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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2.27  06:5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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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 휘 / 그림:문 악 보

‘우산도(于山島)’       

            -이사부, 우산국을 정벌하다 -   

              제25회   

              

                제9장- 옥비석(玉碑石)

                9.1 석총

울릉도로 돌아온 이사부는 다음날 아침 왕궁 대전에서 회의를 소집했다. 아장 직삼이 나서서 이사부가 출타한 중에 일어난 일들을 보고했다.

“계곡 너머로 달아났던 골계의 거민들은 대부분 마을로 다시 돌아왔나이다. 하오나 우산국 병사들 중 일부가 섬 서북쪽 서달령과 지통골에 은거하고 있으며, 나리분지 쪽으로 집결한 병사들도 더러 있다는 보고를 받았사옵니다.”

“적절한 방법을 통해 그들에게 우해왕의 자결 소식을 알려라. 귀복하는 자에 대해서는 선처할 것이로되, 끝까지 불응하고 항거하는 자는 불 사자들로 하여금 모조리 찢어발기고 불에 타 죽게 할 것임을 널리 선전하라. 특히 신라국의 병사들을 위해하는 자는 그 가족까지 모두 참살할 것임도 분명히 전파하라.”

“명 받들겠나이다.”

“바다에 뛰어들어 목숨을 끊은 우해왕을 위한 위령제를 올릴 것이다. 아울러, 저 극악한 왜국 무사들에게 납치되어 우산도에서 억울한 죽음을 당한 우해의 딸 별님과 실직주 해리현 맹방마을 촌주의 딸 산단화의 장사 또한 함께 치를 것이다. 상심해있을 울릉도 거민들에게 이 계획을 널리 알려 신라국의 군대가 결코 무고한 백성들을 해칠 의사가 없음을 확인시키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성심을 다해 준비하도록 하라.”

“장군의 명을 엄중히 수행하겠나이다.”

제장들이 모두 허리를 굽혀 이사부의 명을 받았다.

“그리고, 비록 이번에 우산도로 접근하는 왜국의 군선을 대파하여 격침시켰으나 왜국의 군사들은 또다시 침범을 꾀할 것이다. 수시로 순양하여 놈들의 동태를 살피고, 필요한 조치를 취하도록 하라.”

“알겠나이다. 장군.”

“회합을 파한다. 모두들 위치로 돌아가 임무수행에 만전을 기하라.”

“예.”

그렇게 회의를 막 마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장계를 들고 서라벌로 달려갔던 전령이 왕의 교지를 받아 당도했다.

왕의 교지는 첫 문장에서부터 환희에 차 있었다.

‘신라국을 향한 이사부 장군의 신명을 다한 충의를 진심으로 치하하노라. 그대가 금번 우산국과의 대전에서 승리하여 우산국을 복속한 일은 조국을 위해서 세운 일등 공업일 뿐만 아니라, 국사에 길이 남을 쾌거로다. 상찬 또 상찬하고도 남을 그대의 승전을 짐은 대소신료들과 함께 경하하며, 그대가 임무를 마치고 서라벌로 돌아오는 때에 크게 포상하리라. 모쪼록 남은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여, 울릉도가 다시는 야만의 땅이 되지 않도록 단단히 정비하라. 왜국의 침략야욕이 뚜렷하다 하니 그에 대한 방비를 튼튼히 해두기를 특별히 이르노라.’

왜 그랬을까. 전령으로부터 전해 받은 왕의 교지를 다 읽고 난 이사부의 가슴에 불현듯 허전한 기운이 안개처럼 차오르기 시작했다. 산단화가 죽었구나.... . 불현듯 산단화의 죽음이 살을 에는 고통을 품고 심중에 파고들었다. 참으로 가여운 사람.....아리땁던 산단화의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그 때 문밖에서 명진의 목소리가 들렸다.

“군주님! 아장께서 우직 선주님과 함께 들었습니다요.”

“뫼셔라.”

명진이 열고 선 방문으로 직삼과 우직이 함께 들어섰다.

“그렇잖아도 부르려고 했소이다.”

이사부가 그들을 맞으며 말했다. 우직이 머리를 조아렸다.

“장군의 상심하신 모습을 뵈오니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명진으로부터 산단화의 이야기를 더욱 자세히 전해 들었으리라. 이사부는 아픈 마음을 위로하려는 우직의 뜻이 고마웠다.

“감사하오. ..... 세상일이란 것이 더러 그렇게 야속하구려.”

그렇게 말하는 가슴 한 구석이 저렸다.

직삼이 말했다.

“우해왕의 위령제와 장례를 어찌 준비하면 좋겠는지 하명을 받고자 하나이다.”

“해귀들이 호락호락 놓아주지 않을 것이므로, 우해왕의 시신을 찾아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장례는 울릉도의 습속대로 하는 것이 무난하리라고 본다. 여기 우직 선주의 자문을 받으면 될 것 같구나.”

우직이 말을 받았다.

“사실 울릉도의 습속이란 것도 신라국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별님과 산단화 낭자의 매장 또한 석총(石塚)으로 준비하면 무난할 듯합니다. 우해왕의 위령제를 올린 후 함께 장사를 치르면 될 것 같습니다만..... .”

명진이 끼어들었다.

“비파산 뒤쪽에 귀족들의 석총 터를 보았습니다요. 좋은 자리를 잡아서 장사를 지내면 무난할 듯 하옵니다요.”

이사부가 말했다.

“그래...그렇다면, 우직 선주께서 중심이 되어서 준비해주시오. 위령제는 마을 한가운데에 있는 비파산 앞자락 바위산 아래에서 지내기로 하고, 비파산 뒤편 석총 터에서 좋은 자리를 잡아서 무덤을 준비하도록 하시오. 서둘러야 할 것이오.”

직삼과 우직이 함께 답했다.

“분부대로 시행하겠나이다.”

그들이 함께 대전을 물러나간 뒤 이사부는 아린 기운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고통을 억누르고 있었다. 하지만 웬 일인지, 오랫동안 참아왔던 야릇한 슬픔이 심상찮은 파장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곰삭은 그리움이 눈시울에 먹물처럼 번져갔다.

침소에 든 이사부는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눈을 감으면 자꾸만 산단화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꿈인 듯 생시인 듯 우해의 왁살스러운 손에 납치되어 끌려 다니는 그녀의 모습이 환상처럼 스쳐 지나갔다.

나리분지 투막집에서 보았던 그녀의 마지막 살아있는 모습도 아스라이 떠올랐다. 실직국 귀족의 후손으로서 후덕하기 한량없던 현덕 노인의 인자한 얼굴도 돌이켜 생각났다. 우산도에서 결국은 등허리에 왜인무사의 칼을 맞아 절명하고만, 고통으로 일그러진 산단화의 모습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아아!”

이사부는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홑이불을 걷어붙이고 일어나 앉았다. 차라리 이 모든 비극이 꿈이었으면 좋으련만, 안타깝게도 꿈이 아니었다. 방안을 둘러보았다. 방안에는 괴괴한 어둠 뿐 아무 것도 있지 않았다.

사랑을 잃었구나! 산단화는 지소와의 생이별로 생긴 모진 상처가 겨우 아물어가던 자리에 가까스로 피어났던 한 떨기 꽃이었다. 그 꽃이 그예 무참히 꺾여버렸구나! 알 수 없는 강렬한 연민의 힘으로 사모해왔던 한 여인이 기어이 죽었구나. 마땅히 보호했어야 할 고귀한 목숨을 내가 미처 지켜내지 못했구나. ....예리한 칼날이 한 순간 휙 베어 내리듯, 시린 애통이 새삼스럽게 이사부의 폐부를 찔러 내렸다.

아팠다. 대 신라국의 장수가 아니라. 범부(凡夫)로 살았던들 이런 참혹한 일을 겪었을 것인가. 만약 신라국을 강성하게 일으켜 세워 삼한일통(三韓一統)의 주춧돌을 세우는 일에 나서지 않을 수 있었다면, 한 사나이로서 연모한 여인에게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다 못하고 이리 후회할 일이 생겼을까. 필생의 애련을 지켜내지 못한 회한이 가슴을 더욱 후벼 팠다.

눈물이 났다. 한번 터진 눈물샘은 좀처럼 다시 닫히지 않았다. 이사부는 산단화가 죽어가면서 다시 넘겨준 색동 복주머니를 가슴에 끌어안고 밤새도록 울음을 삼키며 고통을 풀어내고 있었다.

*

“군주님! 기침하셨습니까요?”

명진의 목소리였다. 눈을 뜨니 동창이 훤히 밝아 있었다.

자리에 일어나 앉았다. 선잠으로 밤을 지새운 피곤이 눈시울에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이사부는 얼굴을 한 차례 좌우로 흔들어 잠을 털었다.

“무슨 일이냐.”

“비파산 뒤쪽 석총 터에서 작업이 시작됐습니다요. 아침진지 드시옵고 한번 둘러보시겠습니까요?”

“그래야겠구나. 조반상을 들이라 이르라.”

“알겠습니다요.”

밥이 모래알 같았다. 아무리 씹어도 혓바닥 위를 까끌까끌 겉돌았다. 된장국에 밥을 말아 후루룩 삼키는데, 또다시 슬픔 한 자락이 욱 하고 가슴속에서 솟아올라 느꺼운 기운을 만들었다.

사(私)를 버리고 산 세월이 길었다. 오직 나랏일만이 뇌리에 가득 찬 긴 나날 속에서 한갓 개인의 희로애락에서 발원되는 감정과 흥분은 언제나 사치품에 불과했다. 그렇게 산 세월이 워낙 오래여서였던지, 산단화의 비극적 운명을 막아내지 못한 일을 놓고 깊은 자책으로 힘겨워하는 자신이 문득 생경스러웠다.

이사부가 밥상을 물릴 무렵 명진이 들었다.

“장군! 산단화 낭자와 함께 잡혀왔던 처자들을 찾았습니다요.”

이사부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래? 지금 어디에 있느냐?”

“문밖에 당도해 있습니다요.”

이사부는 문을 열고 숙소 밖으로 나갔다.

마당에 낯익은 듯도 하고 낯선 듯도 한 세 명의 처자들이 잔뜩 긴장한 몸짓으로 낮게 엎드려 있었다. 이사부는 죽은 산단화를 다시 만난 것만큼이나 반가웠다.

“해리현에서 잡혀 온 낭자들이 맞소?”

반가움을 감추지 못한 들뜬 목소리로 물었다. 세 명 중에 키가 제일 큰 처자가 논을 동그랗게 뜨고 이사부를 슬금슬금 올려다보며 말했다.

“예. 그러하옵니다만..... .”

“일어들 나시오. 혹여 나를 기억하시겠소? 나리분지로 산단화 낭자를 찾아갔던 사람이오.”

처자들이 일제히 고개를 들고 두려움을 아주 씻지 못한 눈빛으로 이사부를 살폈다.

“기억들 나시오?”

이사부가 재차 물었다. 처자들이 깜짝 놀라는 기색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신라군 대장군님이라고 들었사옵니다마는..... .”

“신라군 장군이고, 나리분지로 찾아갔던 사람이기도 하다오.”

이사부의 설명에 처자들은 더욱 놀라는 낯빛으로 눈을 크게 떴다. 그 중 얼굴이 동그랗게 생긴 처자가 말했다.

“이제야 기억이 납니다. 그때 나리분지 투막집으로 오셔서 산단화 아씨와 말씀을 나누셨던 바로 그 분이군요. 그런데 신라군 장군님이셨나이까? 저희들은 추호도 짐작을 못 하였나이다. 부디 용서하소서.”

“용서라니 무슨 말이시오. 처자들에게 무슨 허물이 있겠소.”

이번에는 얼굴이 가무잡잡한 처자가 새삼 생각이 난 듯 물었다.

“그나마나 아씨께서 운명하셨다는데, 사실입니까요?”

산단화의 절명을 확인코자하는 그녀의 물음이 비수가 되어 가슴을 찔렀다. 이사부는 한숨을 쉬었다.

“그렇소. 왜인무사들에게 참살당하고 말았다오.”

“아니, 어쩌다가..... . 왜인들은 왜 그토록 착한 아씨를 해쳤답니까요?”

처자들은 이미 흑흑 흐느끼고 있었다. 소문으로만 듣던 산단화 낭자의 죽음을 확인하는 순간이 못 견디게 서러웠던지 그 울음은 점점 더 커져갔다. 이사부의 뇌리에 불현듯 현덕 노인이 떠올랐다.

“현덕 어른은 어찌 되었소?”

키가 큰 처자가 북받치는 설움을 깨물면서 대답했다.

“촌주님도 돌아가셨습니다요. 그날 장군님께서 나리촌에 왔다 가신 날 우산국 병사들에게 이끌려 배를 타고 이곳 골계로 오던 도중에 그만.... .”

아아, 그랬구나. 하긴 그 때 이미 현덕 노인의 상태는 상당히 위중해 보였었다. 그런 몸으로 병사들에게 이끌려 배를 탔다가 그만 숨을 거둔 모양이었다. 씁쓸한 기운이 가슴을 훑었다.

“그래, 현덕 어른은 어디에 모시었소?”

“통구미라는 곳 근처에 임시로 매장해 놓았습니다요.”

어느 날 느닷없이 고향에서 우해에게 잡혀와 갖은 고초를 겪다가 객사한 현덕 노인의 명운이 안타까워 마음이 저렸다. 이사부는 곁에 서있던 명진에게 일렀다.

“현덕 어른의 유해를 잘 발굴하여 산단화 낭자와 함께 장사지낼 수 있도록 준비하라.”

명진이 안타까움에 젖은 얼굴로 허리를 굽혔다.

“잘 알겠습니다요. 차질 없도록 유해를 정중히 수습하겠나이다.”

이사부는 여전히 슬픔을 가누지 못하고 흐느끼는 처자들을 둘러보았다. 이들의 고난은 또 얼마인가. 불운하여 이 낯선 섬까지 잡혀와 이리저리 끌려 다니는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어 살았으니 딱하구나.... .

이사부가 처자들에게 말했다.

“처자들의 고초가 얼마나 컸는지는 알고도 남음이 있소. 하지만, 현덕 어른이나 산단화 낭자처럼 끝내 명을 지키지 못하고 한스럽게 세상을 떠난 분들도 있으니 위로를 삼으시오. 지친 몸을 좀 쉬게 하고 기운을 가누시오. 정리가 되는 대로 뭍으로 나가 무사히 고향으로 돌아가도록 해주겠소.”

세 명의 처자들은 이사부의 말에 엎드려 감사의 예를 갖췄다.

“고맙사옵니다. 군주님의 은덕으로 저희가 이제 모두 살게 됐나이다.”

이사부는 다시 명진을 향해 말했다.

“궁성 안에 처자들이 묵을 숙소를 마련해주고 음식을 제공하라.”

“예, 군주님. 분부 받잡겠습니다요.”

명을 받은 명진이 처자들을 데리고 대문 밖으로 나갔다.

*

돌무덤이 많았다. 남서천 위쪽, 그러니까 비파산 뒤편 기슭 경사지에 고인돌 모양의 석축을 중심으로 쌓아올린 크고 작은 돌무덤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볕이 잘 드는 지형도 그렇지만, 주변에 암석이 널려있다는 이유 때문에 묘지가 된 모양이었다. 무덤 터 제일 높은 곳에서 일백여 명의 인부들이 석총을 만드는 작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한동안 돌무덤들을 둘러보던 이사부가 작업을 지휘하고 있는 부장에게 물었다.

“여기에 혹시 풍미녀의 무덤이 있지 않더냐?”

“없었나이다. 듣잡기로는 살아생전 워낙 고향을 그리워했던 왕비였던지라 죽은 다음 곧바로 시신을 배에 실어 대마도로 보냈다고 하옵니다.”

풍미녀를 향한 우해의 사랑이 얼마나 깊었는지를 다시 한 번 더 알게 해주는 대목이었다. 이사부의 가슴에 허허로운 기운 한 자락이 일었다.

“여기에서 제일 큰 무덤의 크기가 어떻게 되더냐?”

“장축이 세 발, 너비가 두 발, 높이가 한발 정도 되나이다.”

“그렇다면, 우해왕의 무덤은 장축 다섯 발, 너비 세 발, 높이 두 발 크기로 꾸며서 더욱 크게 장만하라.”

“알겠나이다.”

부장이 허리를 앞으로 꺾어 명을 받았다.

“또 저 아래쪽 양지바른 곳에 작은 석총 하나를 더 준비하라.”

“분부대로 시행하겠나이다.”

“언제 완성이 되겠느냐? 늦어도 모레까지는 완성이 되어야 할 터인데?”

“밤낮을 가리지 않고 작업하면 너끈히 맞출 수 있을 것이옵니다.”

“차질이 없어야 하느니라.”

“심려 마시옵소서.”

햇볕에 검게 그을린 부장의 얼굴에 땀방울이 송송 맺혀 있었다. 이사부는 수행한 아장 직삼에게 말했다.

“아장은 석총 작업에 차질이 없도록 만전을 기하라.”

직삼이 고개를 조아렸다.

“분부 받자와, 부족함이 있지 않도록 전력 지원하겠나이다.”

-연재 26회로 이어집니다-

<註>

* 석총(石塚, 돌무덤) * 삼한일통(三韓一統, 삼한통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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