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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3.04  19:3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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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 휘 / 그림:문 악 보

‘우산도(于山島)’

-이사부, 우산국을 정벌하다 -제26회-

제9장- 옥비석(玉碑石)

9.2 위령제

사흘 뒤였다. 신라군에는 특별경계령이 내려졌다.

비파산 앞자락, 마을 한 가운데 우뚝 솟은 바위산 앞 쪽 가파른 산비탈에 목재로 지어올린 제단이 차려졌다. ‘우해대왕신위(于海大王神位)’라는 검은 글씨가 뚜렷한 목판 위패(位牌)가 세워졌고, 통과일과 시루떡이 다섯 단 규모로 진설됐다.

이사부는 제단에서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휘하 장수들과 함께 위령제를 지켜보고 있었다.

우해왕이 마지막 신었던 가죽신과 별님이 입고 있던 옷, 꽃신이 올려졌다. 제주(祭主)인 우직이 흰 예복을 차려입고 제단 앞에 섰다. 패망한 우산국의 삼십여 명 중신들도 예복차림으로 도열해 있었다. 우산국 백성들이 삼삼오오 몰려나와 골계 입구 쪽을 입추의 여지없이 가득가득 메웠다. 그들은 하나같이 우해왕의 죽음과 패망한 나라의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초라하고 어두운 표정이었다.

제단 옆에 있던 화랭이가 둥둥 북을 두드려 제사의 시작을 알렸다.

이윽고 형형색색의 천을 몸에 감고 꽃으로 장식된 고깔모자를 쓴 남무(男巫)가 긴 넋대를 들고 나타났다.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그의 가슴에는 붉은 천을 꼬아서 만든 줄을 한쪽 발에 묶어 맨 수탉 한 마리가 안겨 있었다.

제사 준비가 끝난 것을 확인한 남무가 바다 쪽으로 발길을 돌려 내려갔다. 몽돌해변을 절벅절벅 걸어서 나아간 무당은 바다를 향해 장대를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수탉의 한쪽 발에 묶인 긴 줄의 다른 한 끝을 장대 끝에 단단히 묶어 맸다.

남무는 이윽고 소리를 쳐 넋걷이를 시작했다. 중늙은이 남자의 소리라기엔 매우 날카롭고 높으면서도 기운이 펄펄 넘치는 특이한 목소리였다.

“우산국 골계 앞바다 깊은 물속에서 춥고 외로운 황천길에 접어드신 우해대왕의 영령이시여! 부디 이 넋대를 잡고 올라와 살아생전 사랑하시던 백성들이 바치는 제를 받으소서!”

남무는 바닷물에 발을 담근 채 바다 쪽 하늘을 향해 안고 있던 닭을 힘차게 던져 올렸다. 한쪽 다리에 천으로 만든 붉은 줄이 매달린 닭은 푸득푸득하고 꽤 멀리 날아가 바닷물에 첨벙 빠졌다.

바닷물에 거꾸로 처박힌 닭은 물 밖으로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한참을 기다려도 닭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파도가 조금 높아지는 듯 했다.

남무가 장대를 잡아들더니 서서히 잡아당겼다가 놓았다가 하면서 알아들을 수 없는 야릇한 주문을 외웠다. 무당은 아주 조심스런 손길로 쉼 없이 장대를 올렸다 내렸다하여 붉은 줄을 천천히 당겨 올렸다.

남무의 넋걷이를 보고 있는 사람들 중에는 긴장하여 숨소리조차 제대로 내지 못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아낙네들과 아이들 눈에는 이미 눈물이 그렁그렁 고였다.

무당이 떨리는 손으로 조심스럽게 걷어 올리는 붉은 줄 끝에는 죽은 듯 축 늘어진 닭이 끌려오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사람들이 일제히 훌쩍거리기 시작했다. 남무는 몽돌 위로 끌어올려진 늘어진 닭을 향해 뭔가를 중얼거리며 큰절을 올렸다. 그리고는 아주 정중한 몸짓으로 조심조심 닭의 발에 묶인 줄을 풀었다. 그리고는 축 처진 닭을 품에 안더니 제단이 차려진 바위산 앞을 향해 느릿느릿 걸어 올랐다. 바닷가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그 뒤를 따랐다.

제단 앞까지 걸어온 남무는 안고 있던 늘어진 닭을 제단 위에 조심조심 내려놓고 또다시 뭔가를 중얼거리며 큰 절을 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우산국 중신들도 따라서 모두 큰 절을 했다.

“꼬꼬댁! 꼬꼬댁! 꼬꼬꼬!”

그 때였다. 바닷물에 젖은 채 내내 죽은 듯 눈을 감고 늘어져 있던 수탉이 갑자기 소스라치게 놀라 벌떡 일어나 푸득거리며 날카로운 소리로 울었다. 닭은 진저리를 치듯 제 몸에 묻은 바닷물을 세찬 몸짓으로 부르르 털어냈다.

지켜보던 사람들이 모두 하나같이 아연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며 술렁거렸다. 그리고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모두 그 닭을 향해 절을 했다.

“우해왕의 넋이 돌아왔다!”

군중들 사이에서 누군가가 큰소리로 외쳤다.

남무가 제주 우직을 불렀다. 그리고는 술잔에 술을 부어 올리게 했다. 우직은 제단 위 놀라움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해 두리번거리고 있는 수탉 앞에 술잔을 공손히 내려놓고는 큰절을 했다. 닭은 뜻밖으로 얌전히 앉아 있었다.

뒤이어 우산국 중신들이 차례로 술잔을 올리고 절을 했다.

우직이 제단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제문이 적힌 죽편(竹片)을 펼쳐 들었다.

“우산국의 마지막 임금이신 우해대왕의 영령이시여! 마지막 가시는 길에 대왕의 혼령을 봉송하고자 오늘 중신들과 백성들이 모두 한 자리에 모여 엎드렸나이다. 대왕께서 우산국을 위해 펼치신 공덕과 업적을 우리 모두는 추호도 잊지 않고 있나이다. 비록 반도의 신라국에 귀복을 하는 처지가 되었으나, 대왕께서 살아계실 제 울릉도에서 화흡(化洽)해 오신 정성을 마음에 깊이 새겨, 두고두고 그 공덕을 기리겠나이다. 하오니 우해대왕이시여! 이승에서 못다 이룬 꿈일랑 모두 다 망치(忘置)하시고, 가분가분 저승길 가시옵소서. 저승에 닿으시거들랑 그곳에서도 울릉도 백성들이 평화롭고 안온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지켜주시옵소서. 특히 오래 전 저 왜인들을 토벌해 항복을 받았던 혁혁한 기상으로 왜국의 흉계를 아주 막아주시옵소서. 우산국에 남은 온 백성들이 한 마음으로 엎드려 비나이다.”

떨리는 목소리로 읽어 내려가는 우직의 위령제문을 듣는 중신들과 군중 사이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더욱 커졌다.

제문낭독이 끝나자 남무가 주문을 외우며 제사상 위에 앉아있던 수탉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수탉은 또다시 비실비실 그 자리에서 죽은 듯 쓰러져 누웠다.

다음 순간 무당의 얼굴이 흉측하게 일그러졌다. 그리고는 사시나무 떨듯이 온몸을 떨기 시작했다. 무섭게 치뜬 남무의 두 눈에는 흰자위만 보였다. 무당은 이내 땀을 뻘뻘 흘리며 비틀거렸다.

“나의 사랑하는 우산국 백성들이여!”

어디선가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린다 싶었다. 우해의 음성이었다. 우렁찬 그 목소리는 산을 저렁저렁 울렸다.

“내가 왔소. 나 우해가 마지막으로 내 백성들을 보러 왔소.”

무당이었다. 무당의 입에서 나온 목소리였다. 말은 분명히 남무가 하고 있는데, 소리는 영락없는 우해의 생전 음성이었다.

좌중은 모두 놀란 얼굴로 그 자리에 엎드려 손바닥을 비비며 거푸 굽실굽실 절을 했다.

남무는 비틀거리며 우해의 목소리를 계속 쏟아냈다.

“내 패주로서 할 말은 없으나, 나의 백성들에게 반드시 일러둘 일이 있어서 무당의 몸에 혼백을 실어 접신하였소. 울릉도는 이제 어김없는 반도의 땅이 됐소. 울릉도가 신라국의 땅이니, 세세손손 울릉도의 땅이었던 우산도(독도)는 말할 것도 없이 반도의 땅이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저 신령한 섬 우산도를 왜인들이 범하지 못하도록 막아내야 할 것이오.”

우직이 마치 우해왕을 다시 만난 듯 무당을 향해 절하며 말했다.

“왕이시여! 아무 염려 마시옵고 편안히 승천하시옵소서. 왕의 뜻대로 남은 백성들이 일심으로 우산도를 지켜낼 것이오.”

남무가 우직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여전히 우해의 목소리로 말했다.

“형님! 일찍이 형님의 충언을 듣지 않았던 이 아우를 용서하시오. 그리고 형님이 앞장서서 부디 이 울릉도를 잘 지켜주시오. 그저 형님만 믿고 가오리다.”

우직은 말을 더 잇지 못하고 그 자리에 엎드린 채 흐느꼈다.

불현듯 무당이 풀썩 쓰러졌다. 좌중은 다시 제단을 향해 일제히 절을 올렸다. 제단 위에 쓰러진 수탉은 영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

다음날 새벽 먼동이 틀 무렵이었다. 이사부는 산단화와 함께 잡혀왔던 세 명의 처자들과 함께 비파산 뒤편 석총 터를 찾았다. 명진이 앞장서서 안내한 묘지 아래쪽 현덕 노인과 산단화 부녀의 합장 돌무덤은 아담했다. 이사부는 돌무덤 앞에서 한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아름답던 그녀의 모습이 자꾸만 떠올라 눈시울을 뜨겁게 만들었다.

무덤 앞에서 처자들은 죽은 산단화 낭자와 현덕 노인을 그리며 오랫동안 목 놓아 울었다.

그날 해가 다 저물어가는 황혼 무렵이었다. 명진이 포구에서 가지고 온 소식은 천만 뜻밖의 것이었다.

“경천선사님께서 포구에 당도하여 배를 내리셨습니다요.”

이사부는 깜짝 놀라 물었다.

“뭐라고? 스승님께서 정녕 바다를 건너 오셨단 말이냐?”

“그러합니다요.”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라, 명진의 분명한 대답을 듣고도 이사부는 뭔가 잘못된 전갈이 아닐까 하는 의문을 아주 씻어내지 못했다. 이사부는 튕기듯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내달았다.

궁성으로 올라오는 길 저만큼에서 웬 노인이 커다란 지팡이를 쿵쿵 내짚으며 걸어오고 있었다. 좀 더 가까이 다가가자 촘촘히 기워 만든 남루한 가사를 걸친 노인은 과연 경천선사였다. 멀찍한 곳에서 이사부를 알아 본 선사가 눈부신 흰 수염을 휘날리며 환하게 웃고 서 있었다.

이사부는 황급히 다가가 스승 앞에 무릎을 꿇고 절을 했다.

“스승님. 그간 기체 일안만강(日安萬康)하시었사옵니까?”

길 한 복판에서 제자의 문안을 받은 선사가 걸걸한 소리로 껄껄 웃었다. 큼지막한 바랑까지 짊어진 선사의 모습은 여전히 헌헌해보였다.

“그래 나는 평안하다. 너도 무탈한 것이냐?”

“예. 소생은 여전하옵나이다. 스승님께서 어이하여 이 험지까지 몸소 납시었나이까?”

선사는 더욱 큰 소리로 껄껄 웃으면서 고개를 앞뒤로 흔들었다.

“폐하께서 찾는다 하시기에 서라벌로 갔더니 너를 좀 살펴보라고 하시더구나. 우산국을 복속한 일을 격려하고, 자문할 문제가 있는지 짚어보라고 하셨느니라.”

이사부는 그 제서야 스승이 거친 바닷길을 건너 온 이유를 알았다.

“네가 신라국의 군사들을 이끌고 나와 온갖 난관을 헤치고 우산국을 복속한 일은 청사에 길이 남을 쾌거로다.”

“칭찬해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사옵니다. 스승님께서 깨우쳐주신 대로 행하였을 뿐, 소생의 공은 초라하기 그지없나이다. 그나마나 동해 바닷길이 여간 험하지 않사온데 고생이 자심하지는 않으셨나이까?”

“산 속에서 사는 땡추가 이까짓 고초쯤이야 대수겠느냐. 견딜 만 했느니라. 허헛!”

이사부는 벌떡 일어나 뒤돌아 앞장서며 말했다.

“제가 모시겠사옵니다. 어서 궁성으로 오르시지요, 스승님.”

“오냐, 알았다. 어서 가자꾸나.”

선사는 궁성 쪽으로 천천히 걸으면서도 눈을 휘휘 돌려가며 골계의 지세를 살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이따금씩 혀를 차거나 고개를 끄덕거리며 흠흠 소리를 내기도 했다.

궁성에 도착하자 이사부는 울릉도에서 나는 나물과 해초를 중심으로 상을 차려 내오게 했다. 산중 취식에 익숙한 선사는 부지깽이나물과 명이 등 울릉도에만 나는 나물들을 맛있게 먹었다.

“아까 스승님께서 골계의 지세를 살피시던데, 어떠하옵니까?”

선사는 골계의 지세를 묻는 이사부를 향해 빙긋이 웃음을 날리면서 되물었다.

“그래, 네가 보기에는 어떠하더냐?”

“예. 소생이 보기에는 남향에다가 청룡 백호가 뚜렷한 지세하며 한가운데에 바위산이 우뚝하여 천연 요새로 생겨난 천생 도읍지인 것 같사옵니다.”

“그렇게 보았느냐. 잘 읽었느니라.”

“하옵고, 마을 양쪽으로 개천이 흘러내려 남쪽 바다로 향하니 생산과 창성의 기운이 양양한 지세로 여겨지옵니다.”

“그것도 정확하게 잘 짚었구나. 이 울릉도가 비록 민생을 위해 아주 구족한 땅은 아니지만 오랫동안 외침을 당하지 않고 그런대로 평안했던 것이 이 골계라는 명당 비기(丕基)가 작용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곳은 기가 센 여인이 득세를 하면 음기가 지나치게 승하여 마침내 쇠망하게 되어있는 땅이기도 하니라.”

풍미녀로구나...그래서 우산국이 명운을 다하게 된 거로구나... 이사부는 그렇게 혼자생각을 하고 있었다. 선사가 차를 한 모금 마신 다음 화제를 바꿨다.

“그건 그렇고, 이 울릉도 전체의 기맥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는 알고 있느냐?”

“그야, 당연히 반도에서 흘러내린 것이 아니겠나이까?”

선사는 이사부의 대답을 들으면서 돌연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틀렸다.”

선사는 이사부의 대답을 듣자마자 고개를 가로저었다. 잠시 뜸을 들인 선사가 다시 입을 열었다.

“우산도라고 있지 않느냐?”

“예. 울릉도 동남쪽 하루 뱃길 거리에 우산도라는 바위섬이 있습니다.”

“그 우산도가 울릉도의 어미섬(母島)이다.”

“예? 그 작은 바위섬이 울릉도의 어미섬이옵니까?”

“그렇다. 물론 우산도와 울릉도 모두의 큰어미 땅은 반도다. 그러나 비록 물 위에 드러난 크기는 작다 해도, 우산도가 울릉도를 낳은 어미이니라.”

“그러하옵니까?”

“그러하다. 우산도는 물 위에서는 아들인 것 같지만, 물속에서는 어미이다. 우산도와 울릉도는 어미와 자식이니 한 몸이다. 지세로 살펴보자하면 울릉도가 적국의 수중에 들어갈 경우 반도의 등허리 급소를 겨누는 칼날이 된다. 따라서 우산도를 빼앗기면 울릉도를 빼앗기는 것이고, 울릉도를 놓치면 반도가 위험해지는 것이다.”

선사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이사부의 뇌리에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지난 봄 명진과 함께 울릉도에 잠입해 들어왔을 적에 우해왕에게 수장형을 당한 내풍 영감이라는 신하의 마지막 말이었다. 죽임을 당하기 직전, 그 역시 ‘울릉도는 반도의 옆구리에 들이 댄 칼이요, 우산도는 울릉도의 옆구리에 들이 댄 칼’이라면서 왜인들을 소탕해야 한다고 외쳤었다.

선사의 이야기는 그동안 골똘히 생각해왔던 몇몇 의문을 해소시켜 주었다.

“그렇지 않아도 왜인들이 우산도와 울릉도를 탐하는 일로 고민이 컸사옵니다. 해결할 방도를 고민하던 중이었사온데, 어찌하면 마땅하겠나이까?”

“왕도가 따로 있겠느냐. 무엇보다도 군사적으로 철저히 방비하는 것이 첫째다. 그러하고..... .”

선사는 말을 끊고 윗목에 벗어두었던 바랑을 끌어당겨 그 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손바닥만한 두 개의 비석이었다. 비석은 옥돌을 깎아 만든 것이었다. 선사는 옥돌 비석들을 이사부에게 내밀었다.

“이것이 무엇인 줄 아느냐?”

“옥으로 된 비석인 것 같사옵니다마는... .”

“그렇다. 옥으로 만든 부적이니라.”

“옥 부적이옵니까?”

비석 앞면에 음각하여 경면주사(鏡面朱砂)를 먹인 붉은 문자는 글씨인지 그림인지 쉽게 알아보기 힘들었다. 한자의 파자(破字)이거나 상형문자 같았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그 글자들은 전체적으로 사자의 형상을 이루고 있었다. 복잡한 그림 제일 위쪽에 ‘칙령(勅令)’이라는 두 글자만 온전한 문자로 알아볼 수 있었다.

“사자형상 아니옵니까?”

“그렇다. 이것은 왜인들이 무슨 짓을 하더라도 결코 저들의 땅이 될 수 없도록 주술을 걸어놓은 피흉추길(避凶趨吉)의 신물(神物)이니라. 내일이라도 배를 띄워 우산도로 가자. 가서 이 표석들을 바위섬에 깊이 파묻고 와야 하느니.... .”

“알겠사옵니다. 분부대로 준비하겠나이다.”

이사부는 밖으로 소리를 쳐서 명진을 불렀다.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명진이 곧바로 문을 열고 들어와 고개를 숙였다.

“부르셨습니까요, 장군.”

“내일 아침에 군선을 띄워 우산도로 갈 것이다. 중군장에게 만반의 준비를 하라 이르라. 우직 선주에게도 전갈을 보내어 동행하도록 하라.”

*

우산도는 여전했다. 우뚝 솟은 바위들은 변함없이 거친 파도의 보챔을 견디고 있었다. 무수한 괭이갈매기들은 끼룩끼룩 낮게 날았으며, 봉우리에 걸려 흐르는 구름이 신비스러운 기운을 만들고 있었다. 낮은 바위 위에서 노닐다가 껑껑 소리를 치며 물속으로 텀벙 몸을 던지는 강치들의 모습도 전과 같았다.

파도가 워낙 높아 군선을 접안하기가 여간 힘들지 않았다.

“과연 신령스러운 섬이로다!”

경천선사는 경이로움이 가득한 눈빛을 반짝거리며 몇 번이고 감탄사를 연발했다.

이사부와 경천선사와 우직 세 사람은 몇몇 군사들과 함께 동섬과 서섬을 차례로 올라 은밀한 곳을 찾아서 바위틈을 비집고 구덩이를 깊이 판 다음 옥돌 비석을 묻었다. 비석을 묻는 작업이 끝날 때마다 경천선사는 지팡이로 땅을 두드리며 잘 알아듣기 힘든 말로 한참동안 주문을 외웠다.

옥 비석 묻는 일을 다 끝낸 세 사람은 장만해가지고 간 음식들을 차려놓고 간단하게 제를 올렸다. 천지신명이시여! 세세 영원토록 왜인들이 이 우산도를 범접하거나 침탈하지 못하도록 굽어 살펴주시옵소서.... . 이사부는 마음속으로 간절히 빌었다.

울릉도로 돌아오는 뱃길도 파도가 높아 멀미가 났다.

골계로 다시 돌아온 그 다음날 아침, 쉬면서 울릉도의 풍광을 좀 더 즐기고 가라는 제자의 청을 뿌리치고 경천선사는 부득부득 바랑을 짊어졌다.

“스승님! 좀 더 머물다가 가셔야 제 마음이 편안하겠사옵니다마는... .”

이사부가 다시 한 번 더 스승의 발길을 잡아보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선사는 정색을 하고 말했다.

“아니다. 네가 이제 모든 일에 가닥을 잡은 것 같으니, 내가 도와줄 일이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구나. 그보다도 내가 석병산 학소대를 너무 오래 비워둬서, 거기 살고 있는 내 산중 벗들이 무척 심심해할 거다. 어서 가서 그놈들과 비비적대고 놀아야지....히힛!”

“기어이 이렇게 가시겠사옵니까?”

이사부가 못내 서운한 마음에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포구로 가는 길목에서 경천선사는 무슨 생각이 난 듯 발걸음을 멈추고 이사부를 돌아보며 말했다.

“비바람 몰아치는 날이 오거든 서슴없이 내게로 오너라.”

이사부는 스승이 불현듯 그렇게 말하는 뜻을 다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말뜻을 되묻지 않고 고개를 숙여 예를 표했다.

“황송한 말씀 잘 기억하겠나이다.”

이사부는 경천선사가 타고 가는 배편에 산단화와 함께 잡혀왔던 세 명의 처자들을 태워 보냈다. 처자들은 배를 타고 떠나면서 죽은 현덕 노인과 산단화 낭자 생각에 또다시 한바탕 눈물바람을 했다.

-연재 27회로 이어집니다-

<註>

* 화랭이(무부巫夫, 양중兩中, 남자 무당도우미) * 남무(男巫, 단공端公, 남자무당) * 넋대(넋걷이에 쓰는 장대) * 어미섬(모도母島) * 피흉추길(避凶趨吉 흉한 일을 피하고 길한 일로 나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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