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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3.11  18:2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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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 휘 / 그림:문 악 보

‘우산도(于山島)’

-이사부, 우산국을 정벌하다 -제27회-

제9장- 옥비석(玉碑石)

9.3 왜인 잔당

“중군장께서 오셨사옵니다.”

해거름이 다 되었을 무렵 명진이 문밖에서 고했다. 점령지 울릉도를 효과적으로 관리할 방도를 다각도로 궁리하고 있던 참이었다.

“들라하라.”

무덕이 들어와 허리를 숙였다.

“무슨 일이냐?”

“다름이 아니오라, 거민들이 미처 도망치지 못하고 숨어있던 왜인 잔당들을 잡아끌고 와서 신라군에 넘기고 있사옵니다.”

“거민들이 왜인 잔당들을 잡아온다?”

“아마도 우해왕의 여식을 참살한데 대한 복수심으로 그리하는 것 같사온데, 개중에는 잡힌 왜인들을 심하게 폭행하는 일도 있다 하옵니다.”

“왜인들이 몇 명이나 잡혀왔느냐?”

“마흔 명이 넘는 것으로 알고 있사옵니다.”

이사부는 왜인 잔당 이야기를 듣자 불끈 솟아오르는 섟을 가누기 힘들었다. 산단화의 참혹한 죽음이 다시 떠올랐다. 이사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직접 확인하겠다. 앞장서거라.”

이사부는 중군장을 따라 골계 남양천 근처 신라군 군영으로 갔다. 그곳에는 형편없는 행색을 한 왜인사내와 아낙들 여럿이 잡혀와 갇혀 있었다. 심하게 맞아 머리가 터지고 얼굴이 붓거나 시퍼렇게 멍든 자들이 적지 않았다.

이사부가 나타나자 왜인들은 일제히 엎드려 울부짖듯 외쳤다.

“도오까따스께떼구다사이!(그저 목숨만 살려주십시오!)”

“이노찌바까니와 오다! 오다!(목숨만은 제발! 제발!)”

우직과 당충이 뒤늦게 소식을 듣고 달려왔다.

“군주님 나오셨습니까?”

우직이 몸을 낮춰 인사를 했고, 당충도 그 옆에서 허리를 굽혔다.

“오셨소?”

이사부가 인사를 받고나자 당충이 흥분을 감추지 못한 목소리로 식식거리며 말했다.

“군주님! 이 왜놈들은 모조리 척살해야 합니다요. 겉으로 보기에는 양민인 것처럼 하고 있어도 놈들은 특수훈련을 받은 왜군 첩자들입니다요. 울릉도를 침략할 준비를 해온 첨병들이라 이들을 처단함으로써 왜국의 침범을 단 한 발짝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우리의 의지를 확실히 해야 합니다요!”

당충은 뭔가 단단히 별러왔던 듯 단호한 모습이었다.

그의 말을 잠자코 듣고 있던 이사부가 우직에게 물었다.

“저들 중에 혹여 그 모야라는 장수가 있는지 살펴보아 주시겠소?”

우직이 허리를 굽혀 명을 받았다.

“알겠나이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중군장은 잡혀와 갇힌 왜인들을 얼굴이 잘 보이도록 일으켜 세웠다. 우직이 마흔 명이 넘는 그들을 하나하나 살폈다.

“아무래도 그 자는 없는 것 같습니다. 전쟁 이전에 왜국으로 돌아갔거나 혼란 중에 도망친 게 분명합니다.”

“그러하오니까?”

이사부는 적이 실망한 표정이었다. 말은 안 했어도, 이사부는 그 모야라는 장수를 다시 보리라는 예감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우직이 돌연 줄지어 늘어선 왜인들을 향해 돌아서더니, 그 중 세 명을 지목하면서 말했다.

“이 자들은 지난 번 모야장군과 함께 성인봉에 올라 쇠말뚝을 박던 놈들입니다.”

“그렇소이까?”

이사부는 그렇게 대답하며 우직이 지목한 왜인들을 살펴보았다. 초라하게 찡그린 얼굴들이었지만, 자세히 보니 과연 안면이 있는 듯한 자들이었다. 당충이 다시 나섰다.

“군주님! 다른 왜인들은 몰라도 이놈들만은 반드시 참해야 합니다요. 본보기를 반드시 보여야 할 것입니다요.”

이사부는 대답 대신 우직을 향해 물었다.

“우직선주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오? 여기 당충 행수는 최소한 저들 세 명 만큼은 도륙하여 본때를 보여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데, 어떻게 처결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보시오?”

우직이 잠시 뜸을 들인 다음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소인의 생각은 이렇습니다. 왜국에 대한 울릉도 거민들의 감정이 어떠한지는 그들이 직접 왜인들을 잡아온 일만 가지고도 충분히 설명이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을 이 자리에서 참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모야장군과 함께 성인봉에 올라 해괴한 짓을 한 자들은 혹장(酷杖)을 내려 엄벌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 다음 이들을 모두 배에 태워 추방하는 것이 옳다고 판단합니다. 그래야 이들이 왜국에 돌아가 울릉도의 단호한 분위기를 소상히 전달하게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사부는 우직의 말을 들으면서 내심 흐뭇했다. 짐작해왔던 대로 역시 우직은 속이 깊어 현명한 판단을 할 줄 아는 우두머리 자질을 넉넉히 가지고 있는 인물이었다. 이사부는 중군장에게 명을 내렸다.

“우직 선주의 말대로 저들 성인봉에서 못된 짓을 한 세 명의 변복 왜병들에게 죽지 않을 만큼의 호된 매질을 가하라. 그런 다음 저 왜인들 모두를 저들의 배에 태워 추방하라! 특히 저들에게 울릉도건 우산도건 그 어떤 왜인이라도 다시 얼씬거릴 경우 모두 다 참수 당하리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주지시켜야 할 것이다.”

중군장이 허리를 굽혀 명을 받았다.

“존명 받들겠나이다.”

군사들이 성인봉에서 쇠말뚝을 박던 세 명의 왜병들을 따로 끌어냈다. 자기들에게 내려진 신라장군 이사부의 처결내용을 제대로 알 턱이 없는 나머지 왜인들은 모두 다 엎드려 목숨만 살려달라는 아우성을 계속했다.

*

서라벌로부터 왕의 교지가 당도했다. 교지에는 점령지 우산국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 비답이 들어있었다. 교지를 훑어 본 이사부는 우직을 궁으로 불렀다.

“울릉도의 들뜬 민심이 다소 진정된 것으로 보고받고 있는데, 우직 선주께서 보기에는 어떠하오?”

우직은 밝은 목소리로 답했다.

“군주님께서 지난 번 우해왕의 위령제를 치러주신 이후 울릉도 거민들은 한결 긴장을 풀어놓고 있습니다. 신라국의 병사들이 더 이상 자기들을 해칠 의사가 없다는 것을 믿게 된 것으로 여겨집니다.”

“다행이구려. 그렇다면 지금부터 우산국을 점령한 신라국의 장수로서 울릉도를 어떻게 처결할 것인지를 말하겠소.”

“알겠습니다. 새겨듣겠나이다.”

“비록 전쟁이 불가피하여 신라국이 우산국을 점령하였으나, 신라로서는 울릉도 백성들을 핍박할 의사가 없소. 서라벌에 계신 폐하의 뜻도 그러하거니와 나는 울릉도가 신라국을 모국으로 여기고 정성으로 조공을 바쳐 복속의 예를 다하기로 약조한다면, 어디까지나 선린으로 상대할 것이오. 우직 선주의 판단은 어떠하오?”

우직은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소인은 진즉, 군주님께서 그러한 도량을 갖추신 분인 줄 알았사오나, 막상 말씀을 듣고 보니 감개할 따름입니다. 울릉도로서는 마땅히 그 뜻에 따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울릉도가 일체의 역심을 버리고 신라국을 충심으로 섬긴다면, 신라국은 울릉도에 선진 문물을 아낌없이 전파해 거민들 삶의 수준을 드높일 것을 약조하오.”

“그저 황감할 따름이옵니다.”

우직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이사부에게 절을 하면서 기뻐했다. 이사부가 다시 말했다.

“우직 선주께서 이곳 유지와 세도가들에게 신라국의 뜻을 잘 전달하여 폐하의 너른 은혜를 깊이 헤아리도록 선무해주시기를 바라오.”

“알겠습니다. 망국의 세도가들에게 장군의 말씀을 성실히 전달하겠사오니 심려하지 마시옵소서.”

우직은 연신 고개를 숙여 고마움을 표했다.

*

신라국 장수들과 패망한 우산국 중신들이 궁궐에 모두 모였다. 양 측의 전쟁을 종료하고, 우산국이 정식으로 항서(降書)를 바쳐 귀복의 의례를 올림과 동시에 신라국이 앞으로 어떤 관계를 유지하여 울릉도를 관리할 것인지 왕의 교지를 알리고 처결내용을 반포하는 자리였다.

먼저 패망한 우산국을 대표하여 우직이 항서를 낭독했다.

“대 신라국과의 전쟁에서 패한 우산국은 조건 없는 항복의 뜻을 분명히 하나이다. 앞으로 신라국을 모국으로 여겨 충성을 바칠 것이며, 매년 성심을 다하여 정해진 조공의 의무를 다할 것이옵니다. 아울러 그 어떤 경우에도 모국인 대 신라국의 대의를 좇아 속도(屬島)로서의 책무를 소홀치 않도록 할 것을 엄숙히 약조하나이다.”

우직은 항서가 적힌 죽편과 우해왕이 쓰던 옥새를 양손에 받쳐 들고 다가와 이사부에게 바쳤다. 그리고는 우산국 중신들과 함께 세 번의 절로 항복의 예를 표했다.

이어서 아장 직삼이 신라국 왕으로부터 전해진 교지를 낭독했다.

“대 신라국의 군사들이 우산국 정벌에 나서 복속에 성공한 일을 감축하노라. 이에 짐은 정벌군의 수장 이사부를 울릉도 주백(州伯)으로 임명하여 점령국에 대한 모든 처결을 위임하노니 빈틈없도록 수행하라.”

교지 내용을 들은 좌중이 일제히 이사부를 향해 읍하여 예를 표했다. 이사부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결연한 어조로 말했다.

“나 김 이사부는 대 신라국의 장수이자 점령지 울릉도의 주백으로서 다음과 같이 엄중히 명한다. 첫째, 이번 대 신라국과 우산국의 전쟁과 관련하여 우산국 신료들과 군사들은 물론 울릉도 백성들 어느 누구에게도 더 이상 책임을 묻는 일이 없을 것이다. 둘째, 우직을 대 신라국의 속도인 울릉도를 관장하는 토두(土豆)의 직에 임명한다. 셋째, 대 신라국의 문물을 울릉도에 전달하여 백성들의 삶을 윤택하게 하기 위해 실직주와 골계를 정기적으로 오가는 상선(商船)을 운행할 것이다. 넷째, 지금부터 왜인들이 울릉도와 우산도 어디에도 발을 붙이도록 해서는 안 된다. 울릉도는 이를 위한 만반의 조치들을 분명하게 취해야 할 것이다. 모국의 도움이 필요할 경우에는 주저 없이 출병을 요청하라. 신라국은 왜인들이 울릉도와 우산도를 침범하는 일을 결코 용납하지 않으리라.”

“성심을 다하여 처결에 따르겠나이다.”

이사부의 처결내용을 들은 신라국 장수들과 우산국 중신들 모두 고개를 숙여 복종의 예를 갖췄다.

정복을 마무리 짓는 일은 언제나 복잡하다. 복속한 나라의 세력지도를 만들어 분석해야 하고, 일어날 수 있는 모든 변수를 고려한 세세한 조처들이 마련되어야 한다.

우산국의 경우는 더욱 까다로웠다. 바다에 가로막혀 내왕이 쉽지 않으니 완비해 놓아야 할 조처들이 훨씬 더 다단했다.

기대했던 대로 토두로 임명된 우직은 뛰어난 지도력을 펼쳐갔다. 계곡 깊은 곳에 숨어서 귀복을 거부하던 소수의 우산국 병사들도 모두 산을 내려와 토두의 휘하에 들어왔다. 우직은 따뜻한 심성으로 울릉도 거민들을 하나하나 보듬고 감싸 안으면서 한 묶음으로 만들어갔다.

*

울릉도에서의 마지막 밤이 지나가고 있었다.

잠을 이루지 못하고 온밤을 새다시피 한 새벽에 이사부는 혼자서 마지막으로 산단화의 무덤을 찾았다. 명진이 공을 들인 덕분인지 작고 아담한 석총은 자리가 잘 잡혀가고 있었다. 무덤 앞에 옮겨 심어놓은 향나무들도 주변과 조화를 잘 이루고 있었다.

무덤 앞에 서서 이런저런 추억에 젖어있을 무렵, 산단화의 마지막 말이 떠올랐다. 죽기 전에 군주님을 이렇게 한 번 더 뵈옵는 것만 가지고도 소녀는 마음으로 행복할 수 있나이다. 병이 깊으신 아비를 두고 소녀 혼자서 배를 탈 수도 없거니와, 설령 부친을 모시고 배에 오른다 한들 쇠할 대로 쇠하신 노인어른이 험한 뱃길을 견뎌내지 못하실 것입니다. 소녀 걱정은 마옵시고, 군주님께서는 어서 뭍으로 나가 출병하셔서 사나이 대장부 나라를 위하여 소명된 큰 뜻을 이루소서..... .

이사부는 품속에 고이 간직하고 있던 색동 복주머니를 꺼내어 무덤 앞쪽 상돌 위에 올렸다. 그리고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낭자. 나는 오늘 이 섬을 아주 떠나오. 마음깊이 그대를 애모하였건만, 내가 너무나 불민하여 사랑을 지켜내지 못했구려. 정말 미안하오. 비록 그대를 이 낯선 섬에 묻고 이별 길을 가지만, 그대의 무구한 순정만큼은 가슴속에 영원히 간직하리다. 끝내 빗겨가고 만 우리 두 사람의 운명이 야속하기 짝이 없구려..... .

이사부는 돌무덤을 쉽사리 떠나지 못한 채 눈물을 견디고 있었다.

-연재 28회로 이어집니다-

<註>

* 혹장(酷杖, 가혹한 매질) * 상돌(상석床石)

[제 9장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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