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인
왼쪽
오른쪽
> 독도뉴스 > 독도자료·여론조사
대한민국 동쪽 끝, 독도의 진실을 찾다동북아역사재단의 울릉도, 독도 탐방기
독도신문  |  dokdotimes@daum.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6.05.24  16:14:28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 독도가 우리 땅임을 알리는 기념비.

“울릉도 동남쪽 뱃길 따라 이백리, 외로운 섬 하나 새들의 고향”

거친 파도가 잦은 동해안 외딴 곳에 자리하고 있는 섬이지만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알고 있는 섬. 날씨와, 파도, 안개 등 각종 요소가 모두 알맞게 맞아떨어져야 비로소 발을 들이는 것을 허락하는 고고한 섬이기도 한 이 섬은, 전혀 거부감 없이 우리를 마치 가족처럼 따스하게 맞이했다. 설레는 마음으로 첫 발을 내딛은 곳, 대한민국 동쪽 끝 독도였다.

다채로운 바위, 맑은 바닷물, 시원한 바람. 대한민국을 설레게 하는 섬의 정체는 무엇일까.

주변국의 역사왜곡 현황과 심각성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 공감대 확산을 위해 동북아역사재단은 5월 19일부터 21일까지 2박 3일간 독도와 울릉도 탐방기회를 마련했다.

탐방에는 올해 초 진행됐던 ‘역사퀴즈 풀고 독도가자!’ 이벤트의 당첨자들과 전문가 및 언론인을 합해 총 12명의 인원이 참여했다. 운이 좋게 취재원으로 동행하게 된 필자는 설레는 마음에 출발 전부터 바닷바람을 맞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배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밀려오는 감격스러움은 이로 말할 수 없다.

독도가 한국 땅이라는 근거는 다 얘기하자면 밤을 새도 모자라다.
주요 사료들만 살펴봐도 이사부 장군의 우산국 정벌(512)이 등장하는 ‘삼국사기’(1145)부터 전 국토의 지리적 특징을 기록했던 ‘세종실록 지리지’(1454)는 물론이고, 일본 메이지 정부의 최고행정기관인 태정관이 1877년 내무성에 내린 지령에도 “울릉도와 독도가 일본과 관계없다는 것을 명심하라.”는 내용이 담겨있다. 이 모든 자료는 논쟁의 여지없이 독도는 한국 땅임을 뒷받침한다.

설렘으로 가득한 채 시작했지만 독도 여정은 만만치 않았다.

서울에서 차를 타고 강릉까지 간 후 배에 올라 약 3시간 동안 뱃길을 달리면 울릉도에 도착한다. 그리고 독도 행 배가 뜨는 선착장까지 차를 타고 이동해 약 1시간 30분 간 다시 바다 위를 달려야한다.

배가 뜨고 파도가 잔잔하다고 해서 입도여부가 확정되는 것은 아니다. 시시각각 바뀌는 바다상황 때문에 독도에 가까워졌을 때 접안이 가능한 상황이어야만 비로써 입도가 확정된다.

배가 독도에 접안할 때의 기쁨은 이내 벅참으로 바뀐다.

독도수비대가 접안하는 배를 향해 일동 경례를 취한다. 독도에 발을 딛기 전부터 가슴이 뻥 뚫리며 카타르시스와 같은 감정을 느낀다. 전 국민이 “우리 땅”이라는 말을 가장 많이 한 국토일테지만 가는 것조차 쉽지 않은 곳을 방문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온 몸에 전율이 돋았다.
새가 뒤덮고 있는 독도는 생각보다 크고 위엄있는 모습을 한 장군감이었다.

일반 관광객은 섬 꼭대기까지 올라갈 수 없어 허용된 관광범위는 그리 넓지 않지만 섬 안에 들어서니 사진으로 보던 외로운 느낌의 섬이 아니었다. 눈이 부시게 맑은 바닷물에 사는 해양생물, 검은 섬을 하얗게 뒤덮은 많은 새들, 그리고 우뚝 솟아있는 제법 큰 규모의 섬은 오리려 최전방을 빈틈없이 지키는 늠름한 장군의 모습에 가까웠다.

때묻지 않은 맑은 물은 당장이라도 마시고 싶은 느낌을 주며 반드시 지켜내야겠다는 생각이 들게했다.

직접 가보니 탐낼만한 곳이란 게 납득이 될 정도로 매력적인 곳
그렇다면 독도는 왜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말을 달고 다니게 됐을까?

공식문서상에도 독도가 자국 땅이 아님을 밝혀온 일본은 러일전쟁 중이던 1905년에 입장을 바꿔 독도가 무주지(無主地)라 주장하며 죽도(竹島)로 이름붙이고 시마네현에 소속시킨다고 밝혔다.
러일전쟁 초·중반까지만 해도 “일본이 한국을 병탄하려는 의심을 갖게 한다.”며 독도 침탈을 주저하던 일본이 마음을 바꾼 것은 군사적 목적 때문이었다.

이후 무주지 선점에서 영유의사 재확인 조치라 말을 바꾸며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였던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포츠담 선언으로 인해 무단 침탈했던 독도에 대한 권리를 모두 잃게 됐다.

한국의 영토로 회복됐음이 명백하지만 계속해서 독도의 영유권을 원하는 것은 20세기 초 제국주의 침략전쟁 과정에서 침탈했던 독도와 한반도에 대한 권리와, 과거 식민지 영토권을 주장하는 행위다. 이는 한국의 완전한 해방과 독립을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영토에 대한 당연한 권리와 자주국가로서의 주권을 갖고 있음을 증명하기 위한 상징적 행위로 우리는 “독도는 우리 땅”을 열심히 외치는 것이다.

한편 일각에서는 일본이 독도를 계속 분쟁지역화 하려고 하며 심지어 2005년부터는 ‘죽도(竹島)의 날’ 행사를 개최하기도 하는 것은 대마도 영유권 문제와 관련이 있다고 주장한다. 독도와 마찬가지로 대마도가 식민지 이전까지 조선의 영토였음이 확실한 증거는 수두룩하다.

이에 이승만 대통령은 1949년 포츠담 선언에 의거, 대마도의 반환을 일본에 요구했다. 하지만 이내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무산됐다. 독도 분쟁화는 대마도가 본격 분쟁지역화 되는 것을 막기 위한 일본의 꼼수로 볼 수도 있다는 것.

울릉도 높은 곳에 올라가 독도를 찾다보니 통일신라 때의 만파식적 이야기가 떠올랐다. 늘 보이는 섬은 아니지만 어느날 보이게 될 때, 독도도 만파식적처럼 행운을 가져다 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더운 날씨로 인해 안개 낀 울릉도 앞바다를 내려다보며 독도를 찾긴 쉽지 않았다. 안개 없이 또렷하게 독도를 보기 위해서는 날씨가 서늘한 가을, 겨울이 적격이라 한다.
울릉도에서 독도를 바라보진 못했으나 한국인이 발을 디뎠고 한글 주소가 있으며, 한국 수비대가 있는 확실한 한국 땅임을 확인하고 왔으니 보이고 안보이고가 어떠하리.

다만 이제 우리가 독도를 얘기할 때 습관처럼 ‘우리 땅’이라고 말하는 것은 고쳐야 할 부분이라 생각한다. 독도는 분쟁지역이 아닌 대한민국의 영토이다.
서울, 부산, 광주 등 다른 지역을 얘기할 때 ‘우리 땅’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당연히 우리 땅이기에 굳이 우리 땅이라 언급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어찌 보면 ‘우리 땅’임을 의식적으로 얘기하는 것이 독도를 분쟁지역화하려는 일본의 술수에 걸려드는 것일 수도 있다. 앞으로는 누군가 독도에 대해 물어본다면 “대한민국 동쪽 끝에 있는 아름다운 섬이야”라고 말해보도록 하자. 그것이 독도를 진짜 우리 영토임을 증명하는 일이다.
 


 

독도신문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가장 많이 본 뉴스
신문사소개   기사제보 광고문의 불편신고 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 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도 우체국 사서함 제1135호. 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도동 국회대로 800. 진미타워(국회의사당 앞)
대표전화 : 02) 782-0008   |  팩스 : 02) 782-0104  |  이메일 : dokdotimes@daum.net
정기간행물ㆍ등록번호 : 서울특별시 아 01260  |  사업자등록번호 : 2001년 6월1일 등록번호 107-19-79815  |  통신판매업신고 : 서을영등포아 0745호
편집자문위원장 : 허대범  |  고문:이규윤  |  부설:리서치  |  전문: 독도연구:조경래 박사  |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 金斗洙
Copyright © 2000 ~ 2013 독도신문. All rights reserved.
<독도신문 후원계좌 농협은행 816901-04-023500 독도신문 김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