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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끌려왔다 댐공사장서 숨진 조선인 유골, 76년만에 고국으로
독도신문  |  dokdotime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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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8.13  17: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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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연행 희생자 유골 35구 귀향길 떠나기 전 日사찰서 추모법회
광복절 앞두고 日서 집회·심포지엄 잇따라


   
▲ 12일 오후 일본 도쿄도(東京都) 히가시무라야마(東村山) 시 사찰 국평사(國平寺)에서 '일제 강제연행 조선인희생자 유골봉환 추모법회'가 열리는 모습. 2018.8.12

1902년 경상남도에서 태어난 박성수 씨는 지난 1942년 구사키(草木)댐 공사장에서 추락사했다.

3년 후 광복이 됐지만, 그의 유골은 아직 조국에 돌아가지 못했다.

다행히도 도치기(회<又대신 万이 들어간 板>木)현의 한 일본인 사찰이 고인의 유골을 모시고 공양을 드렸고 최근에는 재일교포 사찰인 국평사가 이 유골을 모시고 있다.
이국땅에서 억울하게 생을 접은 지 76년, 그리고 조국이 광복된 지 73년. 박 씨의 유골은 한국 단체와 국평사의 도움으로 한국 땅을 밟게 됐다.

광복절을 사흘 앞둔 12일, 일본 도쿄도(東京都) 외곽에 위치한 히가시무라야마(東村山)시의 사찰 국평사(國平寺)에서 14일 고국 한국으로 떠나는 유골 35구에 대한 추모법회가 열렸다. 박성수 씨의 유골도 이 중 하나다.

국평사 주지 윤벽암 스님이 추도 법회에 앞서 절을 올리자 이 사찰의 일본인 신도들과 한국에서 온 단체 활동가들, 조선총련계 단체 인사들 모두 고개를 숙였다.

일제 강점기 끌려와 죽기 살기로 일하다 세상을 떠난 이들은 그동안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이곳에 머물다 한국의 시민단체에 의해 고국 땅을 밟게 됐다.

일제강제징용 희생자유해봉환위원회(이하 유해봉환위)는 단군민족평화통일협의회, 독립유공자유족회, 국학원, 한민족운동단체연합 등 120개 단체와 함께 작년 광복절 즈음 국평사와 유골 101구의 봉환에 합의했다.

   
▲ 12일 오후 일본 도쿄도(東京都) 히가시무라야마(東村山) 시 사찰 국평사(國平寺)에서 '일제 강제연행 조선인희생자 유골봉환 추모법회'가 열렸다. 사진은 추도식 후 14일 한국으로 봉환되는 35구의 유골. 2018.8.12

이번 유골 봉환은 각각 33구가 봉환됐던 작년 광복절과 올해 3.1절에 이은 3차 봉환이다.

이제 국평사에 남겨진 한반도 출신자의 유골은 200여 구다. 대부분 강제징용으로 끌려온 이들이며 그렇지 않다고 해도 일제 식민지가 원인이 돼 일본에 왔던 이들이다.

봉환 대상은 그나마 과거의 기록과 조선총련계 단체들이 직접 조사를 통해 한반도 출신인 것을 확인한 이들이다. 봉환되는 유골의 일부는 북한 지역 출신자의 것들도 있다.

추도 법회가 끝나고 참가자들은 유골을 들고 사찰 경내를 한 바퀴를 돌며 한 많은 고인들이 자신들이 머물던 곳과 이별하는 시간을 마련했다.

폭염으로 유골을 든 이들의 머리에는 땀이 흘러내렸지만, 일부라도 고국 땅에 모셔갈 수 있다는 안도의 마음은 얼굴에 드러났다. 하지만 유골의 한을 풀어주는 전통 의식이 펼쳐질 때는 고인들의 안타까운 사연에 눈물을 쏟는 이들도 많았다.

주지 윤벽암 스님은 "억울하게 일본 땅에 끌려왔다가 숨지신 분들을 이제라도 고향 땅에서 모실 수 있게 돼 다행이다"며 "남북 관계가 좋아지고 있어 남과 북이 함께 강제연행 희생자의 유골을 고국으로 보내는 일을 적극적으로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유해봉환위는 14일 한국에 도착해 김포공항에서 환향 행사를 연 뒤 다음날인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국민 추모제를 개최할 계획이다.

유골은 이후 서울시 묘지인 승화원에 모셔진다. 국평사와 유해봉환위 모두 남북 관계가 좋아져 비무장지대에 평화공원이 세워지면 그곳에 유골들을 모시고 싶다고 말했다.

국평사 같은 일본의 사찰, 납골당 등에서 모셔진 한반도 출신 징용·징병자의 유골은 2천770위로 추정된다. 정확한 실태 파악이 안 된 상황이니 어디까지나 추정이다.

한일 양국 정부 차원에서는 2004년 노무현 대통령과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가 유골 봉환에 합의한 뒤 423위가 봉환됐지만 2010년 이후 중단됐고 이후에는 민간 차원의 봉환 사례만 있다.

지난 2004년 노무현 당시 대통령과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당시 일본 총리가 정상회담에서 유골 반환에 합의한 뒤 한때 급물살을 타며 423위가 실제로 봉환되는 성과를 이뤘지만 2010년 이후 반환이 중단돼 있다.

그런 가운데 국평사의 사례처럼 민간 차원의 봉환 노력은 이어지고 있다. 2016년에는 시민단체들에 의해 홋카이도의 유골 115구가 고국으로 돌아왔고, 최근에는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가 북한 단체와 함께 유골 봉환을 추진하기로 하기도 했다. .

일본 오키나와(沖繩)를 비롯해 남태평양과 동남아시아 등에 묻혀 있는 조선인 군인·군속의 유골은 2만2천구 이상으로 추정된다.

광복절(일본의 패전기념일) 직전 주말인 11~12일에는 이 추모법회를 비롯해 과거사 문제와 관련한 집회와 심포지엄 등 행사가 잇따라 열렸다.

한국과 일본 시민단체 활동가와 시민 등 400여 명은 11일 저녁 도쿄 지요다(千代田)구의 재일한국YMCA에서부터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靖國)신사 근처까지 '평화의 등불을! 야스쿠니의 어둠에'라는 이름으로 촛불 행진을 벌였다.

12일에는 전시성폭력문제연락협의회와 일본군위안부문제해결전국행동 주최로 도쿄 분쿄(文京)구민회관에서 '일본군 위안부 메모리얼데이 인(in) 도쿄'를 주제로 심포지엄이 개최됐다.

심포지엄의 부제는 '김학순씨에서 시작된 #미투'로, 김학순 할머니가 최초로 위안부 피해 사실을 증언한 것을 일본 사회에서 좀처럼 퍼지지 않고 있는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운동과 연결시켜 해결책을 찾아보자는 의미에서 마련됐다.

주최 측은 "김학순 할머니가 침묵을 깨고 스스로 위안부 피해자임을 고백한 뒤 위안부 피해 실태가 알려지기 시작했다"며 "위안부 피해자의 용기는 미투 운동의 선구자 역할을 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해외와 달리 일본에서는 미투 운동이 퍼지지 않고 있다"며 "왜 일본에서는 성폭력 피해자가 침묵을 강요당하고 있는지, 왜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지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행사를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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